자본주의 이야기

독서

책 - 데일 카네기 인생 경영론 북리뷰 (굴비킴)

굴비킴 2024. 8. 15. 12:37

 

평점 2/5 

오늘은 데일카네기 인생경영론 책을 리뷰 하겠다.


자기계발 분야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데일 카네기는 1888년 미국 미주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동안 생활고를 겪기도 했으나 1912년부터 YMCA에서 대화법 및 대중연설을 가르치며 일생의 전환점을 맞이 한다. 

그때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대중연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은 전무 했다. 

사람들은 풍성한 사례와 함께 당장이라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인 원칙을 제시한 그의 강의에 열광했다. 

뿐만 아니라 카네기의 수업 시간은 많은 사람이 본인의 말하기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장이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카네기 연구소'를 설립해 자기계발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처세, 자기관리, 화술, 리더십 등에 대한 그의 가름침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이책은 60인의 각계각층 인사들의 짧은 전기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성공한 과정을 핵심 추적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조금 아쉬웠던 점은 60인의 전기가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열악한 환경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 된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시대와 현재 시대가 일부 동 떨어진 느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고 시대를 막론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성공 포인트를 파악하고 느끼기에는 좋은 책이라 생각 된다.

 

60인의 전기 중에서 원스턴 처칠의 이야기 하나를 간추려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아래와 같은 60인의 삶을 짧게 서술한 책이다. 

절대 위험에서 도망치지 말라 - 원스턴 처칠 -

발생 당시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사소한 일이 때로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예를들어 남북전쟁 발발 4년 전 1857년의 공황 때, 레너드 제롬이라는 남자가 월 스트리트에 120만 파운드 넘게 투기한 일이 그렇다. 당시 레너드 제롬 본인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사건이 오늘날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레너드 제롬이 월 스트리트에 막대한 금액을 투기하지 않았더라면 원스턴 처칠은 절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월 스트리트 투기꾼 레너드 제롬은 바로 원스턴 처칠의 할아버지다. 

원스턴 처칠의 할아버지는 120만 파운드로 '뉴욕 타임즈'의 지분을 일부 사들였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형 경마장 두 군데를 건설했으며, 전 세계를 여행했고, 영국의 귀족들을 대접했다. 덕분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딸 제니 제롬은 랜돌프 처칠 경을 만나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1874년 11월30일 영국의 가장 유명한 성 중 하나인 블레넘 궁전에서 원스턴 처칠이 태어 났다. 

절반은 미국인인 원스턴 처칠은 지금 가장 정력적이고 놀라운 영국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가 살아온 삶은 얼마나 대단한가! 생에 그토록 많은 자극과 모험 그리고 즐거움과 삶을 향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역사상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여러 사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어렸을 때 원스턴 처칠은 군인을 꿈꾸며 종일 장난감으로 군대를 만들어 놀았다.  나중에는 유명한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몇 년 동안 영국 육군에서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고, 인도에서 벵골창기병 부대에 소속되어 전투에 참가 했으며, 수단 사막에서는 키치너경과 함께 수단 원주민들을 상대로 싸웠다.

 

원스틴 처칠은 1900년 담대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유명해 졌다. 
그런 유명세를 타고 불과 스물여섯의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의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처칠은 '절대 위험에서 도망치지 않는다'라는 말을 오랫동안 인생의 좌우명으로 지녔다. 
1921년 미국으로 가서 45번의 강연을 했고, 매 강연마다 220파운드를 받았다. 한번은 런던 경찰국에서 그가 미국에서 암살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 경고했다. 영국의 특정 지역 출신의 무리가 '암살회'라는 조직을 미국에서 결성했는데, 당신이 영국의 권위를 상징하므로 총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곧 바로 강연 투어에 나섰다. 

처칠에게 돋보인 또 다른 자질은 불도그처럼 완강한 투지였다. 
그가 어렸을 때 독학한 것이 그런 자질을 잘 보여준다. 그는 학업 성적이 형편없는 학생이었다. 라틴어, 그리스어, 수학, 프랑스어를 경멸했다. 외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기 전에 영어에 먼저 통달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당연히 옮았다. 

하지만 외국어와 수학을 경멸했기에 늘 초등학교 성적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말하면, 수학을 경멸했던 이 소년이 나중에 재무장관이 되어 4년동안 영국의 재정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고 세 번이나 시험을 보았지만 전부 떨어졌다. 네 번째 시도에서 겨우 입학할 수 있었는데, 4전5기였던 셈으로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다. 

총리일 때 원스턴 처칠은 하루 14~17시간을 일했고, 매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때도 많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는 엄청난 추진력과 활력으로 일하고 있어 여러 명의 비서들을 아주 빠쁘게 만든다. 

원스턴 처칠의 연설집은 '영국이 잠든 동안'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되었다. 

여러 해 동안 대다수 영국 정치인들은 잠들어 있었다. 세상을 압도할 전쟁이 곧 닥쳐오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오로지 처칠만이 장차 히틀러가 일으킬 심각한 위험을 예감하고 경고했다.

 

1933~1939년까지 6년 동안 그는 거의 매일 독일이 재무장하고 있고 히틀러가 탱크, 총기, 전투기를 만들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영국을 폭격하고 영국 함대를 침몰시켜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예견했다. 영국이 그의 예언을 듣고 철저히 무장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한 미치광이의 머릿속을 오가는 황당무계한 꿈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